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우리 어머니는 마트 여사님이다.
영화 이야기를 하기 전에,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시작해야할 것 같다.
우리 아버지는 원래 열병합 발전소에서 근무하셨고 우리 집은 원래 맞벌이 가정이 아니었다.
그런데 어느 날 자세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,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니까 IMF 즈음이 맞을 것 같다.
발전소에서 구조조정이 있었다. 입사 당시 대졸 학력을 가진 인원을 남기고 그 외의 인원은 모조리 정리하겠다는 거다.
공교롭게도 아버지는 입사 후 야간대학으로 대학교 졸업장을 딴 케이스였고 우리 집은 그렇게 맞벌이 가정이 됐다.
어머니도 처음부터 마트에서 근무하셨던 건 아니다. 꽤 오랫동안 학교 앞 분식집에서 일을 하시다가 내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쯤 마트에서 일을 시작하셨다.
동네 할인마트부터 이사온 집이랑 아주 가까운 거리에 창고형 대형 마트가 생겨서 어머니는 물론 어머니의 동네 친구들까지 전부 마트 여사님들이 되었고, 내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어머니는 마트 여사님으로 불리고 있다.
여사님들은 전부 내 어머니이고, 이모들이고, 언니와 동생들이었다.
영화 이야기로 들어가서, 나는 이 영화를 지금에서야 봤다. 거창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고 단순히 개봉당시에는 시간이 없어서, 또 지금까지는 적법한 절차로 볼 수 있는 경로를 찾기가 번거로워서였다. 그리고 보게된 계기도 별 거 없이 최근에 왓챠 서비스 구독을 시작하고 메인에 이 영화가 떠서 보게 된 거다.
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이 영화의 일명 여사님들이 하나 하나 남 같지가 않았다.
정말 한 사람 한 사람 어머니같았고, 이모들 같았고, 또 아는 얼굴들 같았다.
우리 어머니는 마트에서 알아주는 마당발이다. 정말 마트에서 단기 알바라도 하는 날이면 여사님들이고 정규직 임원들이고 할 것 없이 내 얼굴을 보고는 아는 체를 한다.
"혹시 어머니가 △△언니(여사님)이니?"
사실 여사님들은 알바를 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털레털레 장 보러 가기만 해도 △△언니네 첫째 왔구나~하고 인사하는 수준이어서 영화속 여사님들 하나 하나 어머니와 친한 이모들이 겹쳐보였다.
겹쳐보이는 건 여사님들만이 아니다. 마트 비정규직 중 가장 어린 편인 미진은 내 얘기 같기도 하고, 한 편으론 알바하며 만난 다른 알바 동생들 혹은 언니들 같았다. 나 역시 마트에서 알바를 하기도 했고, 이대로 취업이 안되면 기회를 봐서 마트 정규직으로 취직을 할까 고민도 했고, 실제로 그렇게 정규직으로 취직한 동생들이나 언니들이 있었다.
그렇게 나는 영화가 시작한 지 30분동안 완전히 영화속 비정규직들과 동화되었고, 그들이 협상에 성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랐고,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.
2007년, 홈에버 사태 이후 지금은
지금은 사정이 많이 나아져서 연장 근무에 대한 압박도 없고 그 외 다른 부당한 대우도 사라졌다. 10대때만 해도 재계약철이면 이력서 작성하는 걸 도와드렸던 기억이 나지만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. 어머니는 더 이상 비정규직이 아니다.
(키오스크가 도입되면서 캐셔 인원을 대폭 줄여 각각 다른 파트에 보내는 일 같은 일도 있었지만, 이건 뭐 기업의 탓이라 보기도 애매한 것 같다..)
영화 속 실제 주인공들이 싸운 덕분에, 또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준 감독님 덕분에 어머니와 이모들은 그 때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으면서 일하고 계신다.